선광미술관 기획전 "강하진 개인전_ 자연율의 세계"
- 일 시 : 09.01 ~ 10.13
- 시 간 : 11:00 ~ 18:00
- 관람일 : 수요일 ~ 일요일
- 휴관일 : 추석연휴,월,화요일
<자연율 014>
<자연율 015>
<자연율 014)
<쇠똥구리>
미학 너머의 미학, 추상 너머의 추상
심상용(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그림에 집착하면 그림은 공격성을 가지게 된다. 그림에 대한 욕심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 “ 나는 보석처럼 빛나고 작고 단단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 그것을 통해 맑게 깨어 있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 ”
-강하진-
실험과 형식에 대하여
1943년생 강하진, 1972년부터 35년간 걸었던 외길, 평생을 화가의 이름으로 산 사람. 강하진에게 화가로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강하진은 ‘제도권 예술’에 온전히 발을 담군 적이 없다. 예컨대 국전(國展)은 ‘원칙도 문법이 없는 화단정치’의 게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화가로선 멀리해야 했던 비진리요 어둠이었다. 제도친화적 접근은 대체로 제대로 된 예술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었기에. 어둡고 가난한 시절이었기에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그뿐 아니다.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적당주의, 속물근성, 시류에 편승하기를 거부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그런 것처럼. 운명을 견디는 것이 그런 것처럼. 어느날 강하진은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그림을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 회의. 그러나 내가 던진 화두에 내가 걸린 것을 누굴 탓하랴!”
“아침에 눈을 뜨면 현실의 아수라가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편치 못하니 어찌 우일신의 고행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림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일신행과 울력을 해야 할 것이야.”(강하진 p.44)
강하진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소유에서 존재로, 사유의 패러다임을 이동할 것을 촉구하는 일이고, 영욕을 거스르는 지적 긴장을 벼르는 일이었다. 자신을 “무한히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데카르트적인 권력 환상, 곧 객관적 이성으로 완전무결한 지식체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하는 임무다. 그림은 내내 그에게 “완고하고 차가운 표정”을 짓는,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지만, 편하자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자체가 강하진에게는 무모한 실험이다. 이 실험은 근현대 미술사의 장구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형식주의적 실험미술이 말하는 형식 실험은 물론이고, 이에 더해 진정성, 사유의 강도 곧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윤리와 책임까지를 무한히 압박하는 포월적인 실험이다. 그림 그리기는 미학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내재율’에 부단히 가담하는 일이어야 하고, 강하진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었다. 반면 근현대 서구 담론에서 미술이란 불변하는 보편률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류(時流)의 강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궁극으로 삼고 지향하는 것 아닌가. 서구의 형식주의 미술이 왜 반복해서 생기가 결여된 창백한 빈혈의 것으로 귀결되는가가 자명해지는 대목이다. 강하진이 1970년대 이후의 서구 개념미술을 ‘실패한 미술’로 판명하는 이유다.
추상도 같은 맥락이다. 강하진에게 추상은 불가피하다. 대상을 추상화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볼 수 없기에, 추상은 단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회화는 분명 추상의 형식을 띠되, 형식주의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추상이다. 그것은 해석이거나 컨셉이 아니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요 그가 사는 삶이다. 떨림, 흔들림, 아마도 기다림과 매우 유사한 행위가 아닐까. 예술은 시대정신-자주 범속한 시대성으로 주저앉고 마는- 보다 더 드높은 정신을 향하는 일이다.
소화(消化)에 대하여
강하진에게 회화는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이자 흔적이다.” 이를테면 삶을 소화하는 일이었다. 강하진에게 그림의 근본은 인간으로서 잘 사는 것, 삶에 대해 겸손해지는 신성한 의례다. 세련된 컨셉, 시각 담론의 왈가왈부는 우스운 일이다. 회화는 소화가 그렇듯 평생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노동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기대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상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반복 안에서만 예술은 타락의 조력자로 쉽게 내몰리지 않을 수 있다.
가로줄 위에 다시 가로줄을 얹고, 세로줄 위에 다시 세로줄을 긋는 강하진의 교차와 반복은 레시피로 보자면 예컨대 구운 양고기나 말린 돼지고기에 발효된 와인을 곁들이는 미식가(美食家)의 식사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구강의 쾌락을 추구하는 단계에 머무는 것으로서 미식, 젖을 뗀 이후 문화적 젖꼭지를 대체하는 것으로서 미식, 삶의 덧없음을 요리로 승화시키는 것으로서의 미식은 강하진의 것이 아니다. 강하진에게 식탐은 경계의 대상이다. “명심해야 할 것: 나이들어... 덜 먹는 것.... 노인의 식탐 그것은 노욕입니다.” 식탐이 있듯, 회화에 대한 탐심도 있다. 강하진은 둘 모두를 경계한다. “그림에 집착하면 그림은 공격성을 가지게 된다. 그림에 대한 욕심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강하진의 <자연률>(Natural Rhythm) 연작을 보라. 식도락이나 미식주의의 면모는 조금도 없다. 반복되는 점찍기와 지우기는 문명의 진수성찬에 대한 반성, 물질적인 단출함, 색의 원초성으로의 회귀를 환기한다. 금욕적인 레시피다. 직접 키운 채소에 지나치게 짜게 간을 하지 않은, 향신료나 마아가린을 사용하지 않은, 구순기의 쾌락을 탐하는 것이 아닌, 정신을 위해서는 분명 좋은 레시피다. 시각적 맛을 추구하지는 않다. “불감증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의 주황색과 노란색을 보라. 회색조차도 맑고 화사하다. 점을 찍고, 그 점을 지우고, 지우기를 다시 지우는 것을 통해 축적되고 물질화된 색에서는 예컨대 그 의미가 부풀려진 색면추상에선 마주할 수 없는 시간의 향기가 우러난다. 이종구 작가는 그 화사함의 근원이 강하진의 ”검소한 일상, 기름기가 제거된 견허한 인품, 따듯한 민족 정서” 등에서 온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든 강하진의 레시피가 단지 영양학적으로만 고려된 저칼로리,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식단인 것만은 아닌 셈이다.
어느 시대고, 가짜 음식과 가짜 조리법, 가짜 레시피가 넘쳐난다. 1세대 미술평론가 이일은 일찍이 한국의 추상화단에서 이를 간파하고 크게 경계하고자 했다. 특히 한국 추상화의 독자적인 레시피가 없는 현상에 주목했다.
“오늘 기성의 추상 예술가들은 지난날의 작품 활동의 결산을 역사의 이름 아래, 후세대의 평가받아야 하고, 각기 제 나름의 독자적인 양식을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역사의 심판에 견디어낼 예술가가 몇 명이나 있을 것인가?”
이일의 판단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형식주의적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차원에서 모색된다. 제대로 된 추상 미학의 지평에서라면 형식이 아니라 형식을 잉태한 정신, 시각이나 시선이 아니라 그것을 잠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영혼의 무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추상화가 정신세계를 거론하는 것이라면, 그것에 다가서고 읽어내는 심미안 또한 시력을 넘어서는 정신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강하진의 추상이 소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강하진의 추상은 미학적 지향, 노선, 취향 너머에 있다. 그것은 색면추상도 게르하르트 리히터 류의 포스트 추상도 아니다.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에 기댄 적도 없다. 그의 터치는 시류를 굴절시키는 방편인 적이 없다. 그의 색은 단 한번도 색 자체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 추상의 소박하고, 깊고 그윽한 맛은 삶을 대하는 “진정성, 치열한 태도, 깊은 도량”에서 온 것이다. 참으로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치요, 이력서에 담기지 않는 이력에서 나오는 레시피인 것이다.